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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지는 것 버려지는 것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16-02-19 11:00     조회 : 1623    

깨지는 것 버려지는 것


신전이 많은 남인도를 여행하다 만나게 되는 힌두교의 시바신전에는 신상이 없고 무언가 푹 박혀 둥그렇게 세워진 원통형만 남아있다. 파괴의 신 시바의 모양은 남녀가 합궁하는 것을 상징하기도 하고 우주의 겉모양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온화하고 부드러운 비슈누 신과 음양처럼 대비를 이루고 있다.

여러날 전에 수묵화를 그려보겠다고 하얀 종이를 반듯하게 붙여 놓았다. 헌데 차일피일 미루며 다른 작업을 하던 중에 곱게 붙여놓은 종이 위에 누런 기름 몇방울이 떨어지고 말았다. 순간 황당한 기분이 분수처럼 퍼졌다. 넓고 깨끗한 종이에 처음 붓을 댈 때의 설레고 흥분되는 순간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원래 기름과 수묵은 재료의 이질적인 특성 때문에 혼용해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순백의 종이 위에 떨어진 몇방울의 기름은 창조의 파괴였고 순결의 상실인 것이다. 그런데... 역사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기름 묻은 종이를 어떻게든 사용해보려고 몸부림을 치는 타협과정에서 옻을 머금은 쓸모없는 기름자국 주변에 생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기름 묻은 종이 위에 사색의 꽃들이 무수히 부서지고 흩어지며 종이 위에 내려 앉으면서 먹의 춤사위가 허락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미완의 협주곡처럼 서로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끌어안고 엉엉 울었고 묵의 수성과 옻칠의 유성의 잘못된 만남이 몸부림치며 흐느꼈다. 그리고는 단단한 사고의 틀을 깨고 그 틈새로 새로운 창조물이 종이 위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마치 일상의 모든 움직임과 삶의 행동들이 직선과 곡선으로 이어지며 어떤 의미로 승화되듯이...

사유의 공간속에서 파괴는 곧잘 창조를 일으킨다. 삶이라는 하나의 공간 속에서 어디론가 떠나고, 기다리고, 사랑하며,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알갱이처럼 흩어지고 점철이 되지만 다 같은 무게로 느껴질 때 파괴와 창조의 무게는 과연 다른 것일까? 태어나서 자라고 사랑하며 늙어가다가 소멸되는 수순이 삶이라면 그 안에 쌓여가는 생성과 소멸의 무게는?
멈춰있는 공기와 활발한 바람의 무게차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