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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예섬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1-11-04 16:34     조회 : 844    

초예섬


양평의 한 모퉁이에 고독의 섬을 만들고 예술의 파도를 치고 있는 나는 가끔 시간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양평의 시간은 바람타고 다녀서 속도있게 느껴진다.

남한강을 끼고 있는 강하는 계절이 지나가는 변화를 더욱 실감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요즘 같이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때는 섬에서의 시간이 현실에서의 시간보다 훨씬 빨리 간다. 이슬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바람이 지나는 모습을 보고, 야생화 계절 옷 바꿔 입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의 달이 뜨고 가슴이 젖어들어 교감의 창이 뜨면 나의 섬은 예술의 텃밭이 된다.

이 세상과 교감하지 않으면 네트워크가 형성되지 못하고, 네트워크가 형성되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가 있어야 내가 있고, 하늘이 있어야 땅이 있듯이 세상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것이 바로 섬에서 태어난 생명들인 것이다.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지만 그것들이 연결된 것이 세계라는 세계관을 작품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하늘, 교감, 연기, 마음의 흐름, 관계 등 이 모든 것이 작품의 화두가 되었다.

그림을 그린 지 40년이 넘었지만 예술가의 길은 여전히 아프고, 힘들고, 고독하다. 매번 하안거, 동안거에 들어가는 수행자처럼 그림을 그린다. 인생에서 찾아가는 길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진정한 인생길은 어디인지 모르고 헤매는 것이 일상이다. 사방으로 갈라진 길 위에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있는가? 그러한 수행을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그림을 그리지 말아야 한다. 고독하지 않으면 예술가가 아니다. 종교가 대중에게 바른 삶을 보여주듯 예술도 대중과 어울리기보다는 대중을 깨닫게 하고 이끌어 가야 한다.

나는 이름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후배가 되었건 다른 누군가가 되었건 나의 예술을 통해 새로운 심미안을 얻고 예술세계에 눈을 뜨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죽고 난 후에 내 그림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한두 명이라도 이 사람은 이렇게 이런 생각을 옮겨 놨구나 하고 쳐다봐 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어렵고 힘든 일이겠지만 내 그림을 통해 누군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만한 화가 인생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예술로 끝나지 않는다.

예술이라는 꽃의 향기는 세상으로 퍼져 어떤 이에게는 삶의 의미가, 어떤 이에게는 아름다움의 희망이 될 것이다. 세상은 한 번에 바뀌지 않는다, 인연이 쌓이고 쌓여서 바뀌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남기는 예술과 인연은 만 가지 꽃이 되어 어디선가 다시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