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에 대한 관조와 사유의 조형적 표현

김상철(동덕여대 교수. 미술평론)

작가 임효(林涍)의 작업은 수묵으로부터 비롯된다. 그의 초기 작업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은 그가 표출해 내었던 그윽하고 유려한 수묵의 장관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풍부한 농담의 감각적인 운용과 거침없는 운필로 이루어진 당시 그의 작업은 수묵 특유의 임리(淋漓)한 감성이 물씬 묻어나는 것이었다. 안주하기 보다는 변화를 추구하고, 치열한 자기반성의 결과를 통해 늘 새로운 과제와 맞닥뜨리고자 하는 작가정신의 발로인 셈이다.

근작에 들어 그의 작업은 또 다른 변화의 내용들을 드러내고 있다. 첨단의 재료와 표현들이 횡횡하는 현대미술의 현실에서 그는 오히려 가장 원초적인 재료들을 작업의 지지체로 삼은 것이다. 그의 작업은 치열한 육체적 노동과 기다림이라는 시간의 축적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만나는 접점을 확인하는 것이며, 자신에 속한 부분에 자연이 절로 이루어주는 부분을 취합하여 수렴해 내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의 신작들은 계곡의 돌들과 유동하는 물의 형상이 나타나고 있다. 명징한 계곡의 청정한 맑음은 서정의 현상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그는 이를 통해 세상 삼라만상은 모두 인연에 의해 생겨나고 소멸하는 변화의 질서를 지니고 있다는 연기(緣起)에 대한 사유를 개진한다.

변화와 변혁을 통해 부단히 본질에 육박하고자 하는 작가의 작업은 이제 ‘펼침’의 과정에서 일정한 ‘거둠’의 과정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현상에서 본질로 접근하는 것이며, 물질에서 정신으로 회귀하는 과정이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생을 거쳐 체득된 자신의 총체적 가치들을 통해 그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관조하고 그 결과를 조심스럽게 화면에 담아냄으로써 스스로 천착해온 화두에 대한 자답(自答)의 일단을 펼쳐 보이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