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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제된 여백의 미’ 토속향 물씬..임효 ‘비움과 채움전’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8-05-26 20:05     조회 : 5360    
‘절제된 여백의 미’ 토속향 물씬..임효 ‘비움과 채움전’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네모난 요람에서 인생을 시작한다. 네모난 집과 네모난 침대, 그리고 네모난 사무실에서 한평생을 살다가 인생의 황혼이 저물면 네모난 관에서 인생을 마친다. 그렇다. 우리 인생은 네모로 시작해 네모로 끝난다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는다.

한국의 된장처럼 구수한 맛을 느끼게 하는 화가 임효(53)는 이 같은 우리 인생을 작은 네모, 큰 네모로 형상화해 다시 직사각형의 커다란 네모 안에 집어넣는다. 가로 10.4m, 세로 2.8m의 대형 화폭에 그려진 ‘인생살이'는 계절에 따라 생성되고 소멸하는 자연의 순환과정을 비움과 채움으로 보여준다.

손수 빚어 만든 한지 위에 동양적 미의식을 표현해 온 한국화가 임효의 ‘비움과 채움전'이 28일부터 오는 6월 13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02-734-0458)에서 열린다. 3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열일곱번째 개인전이다.

작가는 그동안 ‘한국다움'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해 왔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되기 위해선 국수적이어서는 안 되며 세계인이 공감할 만한 보편성을 동반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임효는 이를 위해 한지라는 재료에서부터 신화와 매화·소나무·정자라는 소재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한국적인 것을 찾았다.

한국 문화를 파고들면 들수록 그의 머릿속에는 느림, 비움, 발효, 숙성 등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단지 한지를 작품에 사용한다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해 그는 스스로 수제 한지를 만들기로 했다. 닥으로 한지를 뜨고 도침으로 두드리고 한지에 색물을 우리거나 스며들게 함으로써 그만의 독특한 종이 질감을 만들어냈다.

그가 한지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8여개월. 작품을 그리는 시간보다 재료를 준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 때문에 그의 한지 작업은 작품의 대부분을 완성하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효는 예나 지금이나 상징적 도상들을 즐겨 구사한다.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인간의 의식 밑바닥에 깔려 있는 욕구와 그 표출된 형식들을 적절히 화면에 등장시키고 있다. 매화, 달, 소나무, 연꽃, 정자, 복숭아 등을 추상적이며 단순화된 네모로 나타내고 먹과 채색과 옻칠을 이용해 전통적 유연함이 살아있는 작품으로 탄생시킨다.

작가는 “나의 작품에 나타나는 자연, 시간, 생성과 상생의 궁극적 목적은 무아(無我)로 집약할 수 있다. 궁극적인 무아에 이르기 위해 건너야 할 경계는 바로 공(空)이다. 그것은 비움과 채움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비움은 채움으로 가기 위한 시간이고 채움은 비움으로 가기 위한 시간이다. 채우기 위해 비우고 비우기 위해 채움을 반복해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진리를 그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전시 작품은 단순하면서도 단아하고 한국미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절제미가 빼어나다는 평이다.

이번 전시에는 동양적 미의식이 깃든 단순화된 이미지에 원색적인 기호적 형태들이 가미되어 현대적인 감각이 더해진 세련된 작품 40여점이 선보인다. 흩날리는 꽃잎이나 소나무, 정자와 같은 한국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품들이다.

한편 2006년과 2007년 스위스 취리히 아트페어에서 호평을 받은 임효의 작품은 유엔 ESCAP본부, 국립전주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금호미술관, 한국은행, 외무부청사 등에 소장되어 있다.

파이낸셜뉴스 2008.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