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의 아우라’를 화폭에 담는 임효비움과 채움의 반복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8-05-27 13:08     조회 : 6287     禪의 아우라’를 화폭에 담는 임효비움과 채움의 반복 ‘無我’의 세계를 찾아가 ◇임효는 자신이 만든 수제 한지 위에 먹과 채색, 옻칠을 이용해 나름의 화폭을 만들어 내는 작가다. 콩댐한 전통 장판지를 연상시키는 화폭에선 ‘시간의 숙성’을 볼 수 있다. 작업실 가는 길이 아카시아 꽃향기로 진동한다. 숲내음도 차창 안으로 뛰어든다. 고양시 선유동 야트막한 산 안쪽에 깊숙이 자리 잡은 임효(54)의 작업실은 초록의 바다에 빠져 있다. 서울 구파발에서 차로 20∼30분이면 다다를 수 있는 곳이지만 산중 은둔처를 방불케 한다. 작가는 그곳에서 지난 1년여를 칩거하며 보냈다. “큰 정원에 제 자신을 방목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가 담담히 말을 꺼낸다. 작업실 한켠에 일원상이 그려진 한 폭의 그림이 눈에 뜨인다. 그 속엔 매화 꽃 한 송이가 홀로 피어 있다. 사찰 벽화인 심우도를 연상시킨다. “그저 끼적거림에 지나지 않는 제 작업은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비움과 채움의 여정이지요. 심우도 속 소를 찾고 있는 동자의 모습이라 할 수 있지요.” 그는 어쩌면 이 시대의 심우도를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을 통해 ‘삶의 색’을 묵시하고 정화하고 있는 것이다. 사찰 심우도엔 동자가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면서 본래의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있다. 구멍 없는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가히 귀로 들을 수 없는 본성자리의 소리를 상징한다. 동자가 집에 돌아와 보니 타고 온 소는 온데간데없고 자기만 남아 있게 된다. 결국 소는 마지막 종착지인 근본 마음자리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었음에 놓아 버려야 한다. 배를 타고 피안에 도달했으면 배를 버려야 하는 이치다. 그의 그림에서 구체적 형상이 버려진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 세상은 사각의 틀로 압축됐다. 그러면서도 그것들은 매화꽃처럼 피어나고 있다. “제 작품의 궁극적 초점은 무아(無我)입니다. 속이 빈 통에서 나는 장구와 목탁 소리와 같은 울림의 세계이지요.” 비워 내 자연의 울림을 그대로 담아내려는 몸짓이다. 해인삼매(海印三昧)의 경지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활용하는 묘유(妙有)가 저절로 생겨나듯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것이다. 그의 그림에서 꽃과 산, 정자가 있는 풍경은 바로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우주를 아무런 번뇌 없이 참된 경지로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무아에 이르기 위해 건너야 할 경계가 바로 공입니다. 공은 비움과 채움의 시간에서 얻어지는 것이지요.” 무수히 비우고 채운 붓질로 이뤄진 그의 10m짜리 그림엔 사각으로 상징되는 산수가 이내 매화 꽃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들이 노송 아래 정자에 홀로 앉아 가부좌를 튼 선승의 마음을 흔들듯이 보는이를 설레게 한다. 문인화와 선화가 한데 어우러진 느낌이다. 작업실로 얼굴을 들이민 성근 나뭇가지 사이로 한줌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놀란 듯 입술을 벌린 꽃들이 꽃비가 된다. 모든 것이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되는 풍경이다. 28일∼6월13일 선화랑. (02)734-0458 세계일보 2008. 5.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