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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효 개인전,‘채움과 비움’… 욕심 버리고 마음가는 대로…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8-05-28 08:30     조회 : 4970    

임효 개인전,‘채움과 비움’… 욕심 버리고 마음가는 대로…


2005년 여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연 개인전 이후 그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난해 미술시장이 들끓었건만 그의 작품은 좀처럼 전시장에 나오지 않았다. 한지작업으로 한국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기에 그의 잠적(?)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림 대신에 골프에 빠져 살고 있다는 소문도 간간이 들렸다. 그렇게 3년 세월이 흘렀다.

한국화가 임효(54)씨의 작업실이 있는 경기도 고양시 선유동. 야트막한 산 아래 막사처럼 지은 공간에 들어서니 그는 10m가 넘는 대작 마무리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이번에 야심 찬 작품을 준비했어요. 제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2년 넘게 집안일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았지요. 이젠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세월 가는 대로, 마음 닿는 대로 붓질을 했습니다."

짐짓 여유를 부리는 그에게서는 오랫동안 투병 중인 어머니와 아내를 보살피느라 전전긍긍한 시간을 만회하겠다는 각오와 열정이 묻어났다. 한지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임씨만큼 한국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드러내는 작가도 드물 것이다. 작업은 닥종이를 콩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된장을 띄우듯 한지를 띄우는 작업은 흐르는 시간 속에 삶의 흔적을 띄우는 것과 같다.

"띄운 한지를 여러 겹 수없이 두드리다 보면 하나가 됩니다. 그 위에 먹으로 드로잉을 하고 자연 물감으로 다시 색을 칠하죠. 이런 과정을 거쳐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1년6개월 정도 걸려요." 전통적인 수공으로 꽃잎, 정자, 소나무 등을 화면에 수놓는 작가는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고유한 맛을 살린 작품이야말로 세계 미술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홍익대를 나와 15년째 한지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임씨가 요즘 내세우는 주제는 '채움과 비움'. "욕심을 버리자고 작정하니 작업이 잘돼요. 버리려면 채우는 과정이 필요하죠. 채우기 위해 비우고 비우고자 채움을 반복하는 것, 이게 삶의 모습이 아닐까요?" 이런 무아의 의미를 담은 신작들을 28일부터 6월13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02-734-0458)에서 선보인다.

'명상' '사각정원' '그리움' '화담(花談)' 등 동양적 미의식이 깃든 이미지에 원색적인 기호들이 어우러진 그림들이다. 미술평론가 이재언씨는 "화면 속 여백에서는 은은한 향이 묻어나고, 네모난 형상들은 먹이 번지는 표현으로 질서와 무질서의 조화를 뜻한다. 그의 작품에서 편안함과 넉넉함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삶이 여유롭지 못한 것에서 비롯한 그리움 때문"이라고 평했다.

60년 된 매화 분재가 죽어가는 것을 보고 정성을 들여 되살려낸 사연을 '소생'이라는 제목으로 화폭에 옮긴 작가는 이때 떠올렸다는 글 한 구절을 들려주었다.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은 발밑의 돌을 디딤돌이라 하고, 조급한 사람은 걸림돌이라 한다. 채우기에만 급한 마음을 비우고 사는 지혜를 터득한다면 존재의 의미가 더욱 커지리라.'

국민일보 2008. 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