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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채그림전시-한국의명시전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6-01-23 09:20     조회 : 4353    
서울시립미술관 ‘부채에 담은 한국의 명시전’


사진 위부터 한운성 ‘석류’(정지용 시), 서공암 ‘아리랑’ (강은교 시), 여운 ‘농무’(신경림 시), 정종미 ‘논개’(변영로 시).


늦더위 때문인가. 다시 부채가 돌아왔다. 우리 시(詩) 문학사에 빛나는 주옥 같은 명시들을 그림에 담아서, 민족의 명절 추석을 보름 남짓 앞두고 일으키는 부채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7일 막이 오르는 ‘부채에 담은 한국의 명시전'은 ‘보는 시(詩) 읽는 그림'전시회다. 조그만 부채그림이라고 얕보았다간 큰 코 다친다. 어지간한 구성력과 묘사력, 담력이 없으면 범접하기 어려운게 부채그림이다.
부채에 그렸다고 모두 부채그림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서양화가 한운성씨는 최근 자신의 작업과 유사한 정지용 시인 의 ‘석류'를 의뢰 받았으나 처음 그려보는 부채그림이라 무척 애를 먹은 듯했다. 하지만 서양화 재료와 기법으로 우리의 감성을 절묘하게 담아낸 역작을 내놓았다. 원로 한국 화가 이인실씨가 그린 이병기 시인의 ‘난초'는 선비 정신의 고결한 향기를 되새기게 한다. 30여년간 독도를 그려온 한국 화가 이종상 씨는 김후란 시인의 ‘독도는 깨어 있다'로 민족적 자존심을 일깨우고 있다.
일반 선면전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 고유의 부채와 부채그림의 문화상품화와 세계화에 앞장 서온 이일영 한국문화예술센터 관장이 기획한 전시다. 이관장은 우리 합죽선이 세계 최초로 개발된 접(쥘)부채라는 논거를 제시했고, 중국과 일본의 접부채와 달리 우리 부채는 180도 반원형으로 펴지는 유일한 부채라는 사실과 고갱과 드가·피사로 등 인상파 대가들이 한국의 부채에 그린 그림의 도판을 찾아내기도 했다.

먼저 본 전시. 무엇보다 시와 그림의 조화가 뛰어나다. 나뭇결이 드러나는 가구나 판자에 작업을 해온 김덕용 씨는 정현종 시인의 ‘나무의 꿈'을 그렸으며, 지난해 한국의 여성들을 ‘ 종이부인 '이라는 이름으로 작업해온 한국 화가 정종미씨는 변영로의 시 ‘논개'를 통해 푸른 기개를 보여준다.

박두진의 시 ‘해'는 해맑은 동심의 세계를 화폭에 담았던 한국 화가 이철주씨가, 김소월의 ‘진달래'는 봄꽃이 있는 풍경을 즐겨 그려온 오용길 씨, 도종환의 ‘제주바다'는 역시 제주 작가 강요배 씨, 김춘수 의 시 ‘꽃'은 사랑과 인생을 꽃으로 표현해온 김정숙씨, 함민복 시인의 ‘우산 속으로도 비소리는 들린다'는 우산을 그려온 박인현씨, 민용태의 ‘달'은 나비가 있는 밤풍경을 그리는 이희중 씨, 이승훈 시인의 ‘잠자리 한마리'는 코스모스와 잠자리를 즐겨 그린 김충식씨, 기형도의 ‘수채화'는 우리나라 수채화의 새 지평을 연 정우범씨, 황금찬 시인의 ‘염소'는 역시 ‘염소 작가' 윤여환씨가 작품을 낸다. 좋은 작품도 많다. 한국 화가 송수련씨는 신달자 시인의 ‘다만 하나의 빛깔로'를 통해 단 한가지 먹빛만으로 현대적인 미감을 살렸으며, 민화 작가 서공임씨는 강은교 시인의 ‘아리랑'을 통해 창작민화의 무궁한 가능성을 보였다.

또 판화가 김승연씨가 밤 풍경으로 풀어낸 박정대 시인의 ‘추억도 없는 길'이나 사진과 회화의 접목을 시도해온 권두현씨가 낸 김종삼의 시 ‘민간인'은 부채그림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예고하고 있다.

여운씨의 ‘농무'(신경림), ), 임효씨의 ‘귀천'(천상병) 이강화씨의 ‘낙화'(이형기), 박만규씨의 ‘거울'(이상), 조기주씨의 ‘소리'(박남수) 등도 눈길을 끈다.

이종상 ‘독도는 깨어있다'(김후란 시) 특별전도 다양하다. 윤동주·박정만·김만옥 등 요절시인의 시를 비슷한 연령대의 작가가 그림으로 풀어낸 ‘짧은 삶을 시로 남긴 시인들' ‘부채에 담은 동시들', 한글 서예가들의 휘호를 모은 ‘부채에 담은 옛 시조' 등이 마련된다. 젊은 작가들의 부스전인 ‘시를 담은 부채그림 개인전'도 함께 열린다.
이번 전시엔 가족작가의 참여가 많아 눈길을 끈다. 한운성(서양화)·김희영(한국화) 부부작가, 홍석창(한국화)·정순희(한글서예) 부부는 딸 홍미림씨(한국화)까지 일가족 작가가 참여했다. 한국화엔 모녀 작가가 유독 많다. 이인실·장현재, 송수련·이보름, 주민숙·최정선, 김현숙·배은경씨가 그들이다. 전시에 맞춰 380여쪽의 시집 겸 화집도 냈다. 전시는 15일까지. 관람료는 없다.

(02)725-9467

〈이용|미술전문기자ly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