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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의 축적을 통한 자연과의 만남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9-11-22 10:08     조회 : 4618    

시간의 축적을 통한 자연과의 만남


동서미술은 소재와 표현은 물론 이를 수용해 내는 재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면에서 서로 다른 체계를 지니고 있다. 그중 서구의 재료관이 도구적 수단으로서의 목적이 강함에 비하여, 동양의 재료관은 그것이 지니고 있는 물성에 주목하여 일정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관념성이 두드러 진다. 동양회화의 보편적인 표현방식인 수묵이 그러할 뿐 아니라 , 색체에 있어서 오방색의 운용 역시 그러한 경우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자연에 대한 서로 다른 가치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서구의 자연관이 대립과 충돌의 관계로 자연을 인심함에 반하여, 동야의 자연관은 합일의 대상으로서 자연을 이해한다. 수묵은 세상의 모든 색체의 근본 즉, 어머니 색으로 상징되는 가치이다. 오방색은 객관적 사물의 묘사나 재현이 아닌 특정한 의미를 통해서 시공을 표현하는 상징체계이다. 이는 전적으로 육안(肉眼)에 의한 객관의 재현이 아니라, 심안(心眼)을 통해 이루어지는 주관적 관념과 사유의 발현이라 할 것이다.

작가 임효의 작업은 수묵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재료로서의 의미보다는 일관되게 관류하고 있는 조형적 가치관으로 이해함이 옳을 것이다. 그의 작업 역정은 바로 이러한 가치관의 체현이자 구체화의 과정인 셈이다. 사실 그의 작업은 다양한 변보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양식적, 형태적 변화에 앞서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일관된 사색을 전제로 진행되어진 관념과 사유의 확장으로 이해함이 보다 정확한 것이라 여겨진다.

작가의 작업들은 한지를 작업의 지지체로 삼고 있다. 이는 재료의 특이성, 혹은 차별성에서 거론되기 보다는 그의 조형 이념을 통해 해석함이
보다 본질에 접근 할 수 있는 첩경이 될 것이다. 근작에 나타나는 두터운 한지의 질감과 무작위적인 조형 행위의 흔적들은 그의 작업이 지니고 있는 방향성과 목적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조형적 표현이 아니라 사유의 체현이며, 관념의 구체화이다. 한지는 그 자체가 독특한 물성을 지니고 있다. 가볍고 부드러우며 온유하지만, 질기고 강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지의 물성은 그것이 조형의 매개 재료로 차용되었을 때 그 특성을 드러내기 보다는, 이에 더해지는 행위의 흔적들을 충실히 수용하여 온전히 발휘케 하는 덕목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조화와 절충의 성질이다. 작가는 이러한 한지의 물성을 십분 살려 이를 조형화한다. 그가 마주한 것은 한지라는 재료가 아니라 자연이며, 그의 작업 행위는 인위적인 가공과 조형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과 변화를 수렴해 내는 것이다. 물성에 주목하지만, 그것을 경영하지 않고 방임하며 절로 이루어지는 수많은 변화들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바로 그의 작업이 지니고 있는 요체라 할 것이다.

조형에 대한 동양적 사유는 인간의 몫을 전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모든 조형의 절반은 인간에 의해 이루저지지만, 나머지 절반은 자연에 의해 절로 이루어진다고 여긴다. 수묵을 비롯한 한지 등의 재료는 바로 이러한 조형관을 충실히 반영하는 재료들이다. 인간의 조형행위는 자연을 통해 성숙되고 다듬어져 비로서 완성에 이르게 된다. 이는 한없이 반복되며 이루어지는 시간의 축적이다. 모난 것은 완만하게, 그리고 거친 것은 부드럽게, 그리고 지나치게 작위적인 것은 적절히 다스려 자연스러운 것으로 거둬들이는 것은 바로 시간이라는 자연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듯하지만, 모든 것에 작용하지 않음이 없는 자연은 그렇게 자신의 몫을 스스로 반영해 내며 작품들을 궁극적인 완성으로 이끄는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바로 이러한 미묘한 경계 선상에서 이루어지는 자연과 인간의 대면이다. 무수한 작위와 무작위가 교차하는 가운데 생겨나는 비정형의 형상들은 바로 이러한 조우의 결과물인 셈이다. 인간의 작위는 필연을 드러내지만, 그것은 자연에 의해 우연으로 환원된다. 이는 도구를 통해 이루어지는 기능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으로 접촉하고 마음으로 감응하는 가운데 순간적으로 포착되고 표현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작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무 목적성의 유희적인 것이며, 계산되고 의도된 것이 아니라 절로 이루어지는 우연적인 성질이 강한 것이다. 이는 이성이 아님 감성에 의해 수용되고, 우연을 통해 발현되지만 작가에 의해 필연으로 귀착되어 조형으로 안착되게 된다. 이를 용인하고 수렴하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다. 이는 조형적 지식이나 합리적인 이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것의 총체적인 것의 투영과 반영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가의 작업은 손에 의한 수공의 성질을 지닌 무수히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지라는 자연과, 자연의 일부분으로서의 인간인 작가, 그리고 시간이라는 자연 등이 어우러져 작품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규정되거나 계획된 것이 아니라 비정형적이고 순간적인 것을 통해 이루어지는 독특한 것이다. 전통적인 동양화론에서의 품평에서는 신(神), 묘(妙), 능(能), 일(逸)의 네 가지 단계를 제시하고 있다. 앞서 세 가지의 조건들은 모두 기능적인 숙련을 통해 이루어지는 가치들이다. 그러나 일(逸)은 이러한 것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또 하나의 가치이다. 그것은 인간의 작위적인 행위로는 다다를 수 없는 파격과 일탈의 경지이다. 작가의 작업은 재료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해석력을 전제로 이루어지고 잇지만, 그 결과는 상투적인 품평의 기준에서 벗어난 또 다른 것이다.

작가의 작업들은 자연물을 기저로 삼고 있다. 한지가 그러하거니와 천연안료와 새로 도입한 옷 칠 등이 바로 그것이다. 더불어 이의 가공과 조형적 운용은 전적으로 소공에 의한 '손 맛'에 의탁한다. 이는 그의 작업이 인위적인 조형과 자연적인 것의 조화, 작위와 무작위라는 상대적 가치의 혼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근작들은 옷 칠이 더해져 장식적인 효과와 더불어 화면의 조형적 내용을 배가시키고 있다. 이는 조형에 대한 작가의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역시 작가의 작업이 일관하여 왔던 자연과 인간이라는 커다란 맥락은 견지되면서 이루어지는 부분적인 변화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자가에게 있어서 옷 칠은 그저 색을 지닌 안료가 아니라 자연돠 교감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자 방법으로 수용되고 있음이 여실하다. 그것은 객관의 색채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관념성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상징체계인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전적으로 자연에 대한 용인을 통해 실존을 확인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라 여겨진다. 그에게 있어 작업의 정체성이나 현대성이란 바로 자신의 몸속에 내재되어 있는 독특한 감성과 정서를 바탕으로 자신이 속한 시공을 반영해 내는 것이다. 물질을 숭상하고 조형을 강조하는 현대미술의 격랑 속에서 작가는 극히 동야적인 사유와 사색으로 점철된 관념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하고 있다 할 것이다. 문화는 우열이 아니라 그 차이를 인정할 때 비로서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극히 동야적인 사유를 통해 현대를 호흡하고 반영하고자 하는 작가의 작업은 거칠고 드넓은 현대미술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적 제시라 할 것이다.

김상철(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