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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 가지 꽃으로 피어난 인연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13-07-09 12:57     조회 : 2598    
불광 7월호 ART&HEART

만 가지 꽃으로 피어난 인연

동양화가
임효


임효 작가의 작품에는 꽃이 자주 등장한다. 탐스러운 붉은 꽃이다. 그러나 심장 같기도 하고, 태양 같기도 하다.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깊은 심연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작품들은 모두 ‘하늘’, ‘진리의 힘’, ‘지혜의 빛’, ‘깊은 지혜’, ‘영감’, ‘인연’과 같은, 작가가 탐구하고 있는 주제를 하나씩 표현하고 있다. 30년이 넘는 작가 생활 동안 그는 숱한 변신을 거듭했다. 이는 단순히 작품 재료나 기법을 변화시키는 차원이 아니었다. 비우고 채우고,
다시 비우고 채우기를 거듭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갈급하게 했던가. ‘그림으로 수행하는’ 임효 작가를 만났다.


인연은 그곳에 있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인연과 연기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흔히 물 한 잔 건네도,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잖아요. 인연이 있다면 우리는 어느 시점에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쌓는 인연이 나쁘면 나쁜 인연이 되고, 좋으면 좋은 인연이 되잖아요. 인연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고 실천입니다. 인연을 결과로 알기보다는 과정으로 소중히 여기면 정말 행복한 시방세계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인연과 연기에 대해 고민한 것은 2009년 독일 메클렌부르크에 갔을 때부터다. 독일에 가게 된 것도 어떻게 보면 인연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한마음선원의 대행 스님은 『천수경』을 한글로 풀이하는 작업을 하면서 삽화를 그에게 맡겼다. 외국어판으로도 번역될 책이었기 때문에 그가 해야 할 일은 외국인들이 『천수경』을 읽지 않아도 그림만 보고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천수경』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고생 끝에 나온 책이 『만 가지 꽃이 피고 만 가지 열매 익어』이다.
그는 이 책의 독일어판 출간을 기념해 독일 메클렌부르크에 가게 됐다. 그런데 폭설이 내렸고 꼼짝없이 숙소에 갇히는 바람에 그림만 그렸다. 어느 날 독일의 하늘이 낯설어 보였다. 매일 보는 밤하늘인데도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도 똑같은 달이 떠 있겠구나. 이 달을 가족과 친구들이 똑같이 보고 있겠구나.’
“저 달은 모두 다 공유하는 것이잖아요. 공생共生, 공용共用, 공식公式이라는 『천수경』의 진리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지구와 달의 관계가 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처럼 지구와 태양의 관계도 비슷합니다. 태양에서 멀어지면 겨울이, 가까워지면 여름이 오는 것이 하늘의 법입니다. 이런 생각이 하늘과 교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1995년부터 종종 반야심을 주제로 삼아 그림을 그렸다. 그때의 반야심은 고집멸도, 즉 사성제를 담았다. 독일에서의 경험은 고집멸도의 반야심을 교감, 연기의 반야심으로 변하게 했다. 이 세상과 교감하지 않으면 네트워크가 형성되지 못하고, 네트워크가 형성되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가 있어야 내가 있고, 하늘이 있어야 땅이 있듯이 세상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것이 바로 연기라는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그는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지만 그것들이 연결된 것이 세계라는 세계관을 작품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하늘, 교감, 연기, 마음의 흐름, 관계 등 이 모든 것이 작품의 화두가 되었다.


아프고, 힘들고, 고독하다
사실 임효 작가는 사업에 소질이 있었다. 홍익대학교 미대를 졸업하고 미술학원을 열었다. 그의 지도를 받은 수강생의 70% 이상이 명문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입소문이 퍼지자 학생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3년간 정신없이 돈을 벌었다. “두어 달 만에 아파트도 살 정도로 돈을 벌었고, 좋은 차 몰고 다니면서 술도 양주만 마셨다.”고 한다. 그대로만 계속된다면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인생의 모든 초점이 돈에 맞춰져 있더라고요.” 화가를 목표로 힘들게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정작 내 그림은 하나도 그리지 못하고 돈만 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학원을 친구에게 줘버리고 그동안 벌었던 돈을 싸들고 세계 미술관 여행을 떠났어요.”
그가 유럽에서 만난 화가들은 가장 비참한 시기에 가장 빼어난 명작을 남긴 이들이었다. 고흐, 렘브란트, 고야… 그 누구도 사업이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없었다. 아프고 시린 그들의 영감과 예술혼을 온몸에 새기고 돌아왔고, 전업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서른여덟이라는 나이에 결혼했다. 아이들도 생겼다. 그럴수록 그는 한눈팔지 않고 더욱더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하지만 도리어 살림은 줄어들었다. 학원을 운영하며 샀던 아파트를 팔게 되었고, 전세, 월세로 내려앉았다. 나중에는 월세도 낼 수 없는 지경까지 도달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여섯 번째 개인전을 열었지만 성과는 없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느낀 순간, 외교부에서 연락이 왔다. 유엔 에스캅(UN ESCAP, 유엔 아시아 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 정부 간 고위급회의) 건물에 그의 작품 ‘일월도’를 걸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이 건물 로비에는 그의 작품이 걸려 있다.
화가가 그림으로 평생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켜야 할 의무와 예술가로서의 삶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고 말한다.
“제겐 가족이 있고 그 가족에게 봉사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 강의 같은 ‘아르바이트’를 해요. 하지만 제 본업은 화가입니다. 그림에 제 정신세계와 의지를 담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걸어갑니다.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제가 진심으로 가고자 하는 길입니다.”
그림을 그린 지 30년이 넘어가지만 예술가의 길은 여전히 아프고, 힘들고, 고독하다. 매번 하안거, 동안거에 들어가는 수행자처럼 한지를 만진다. 그러나 피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그림을 그리지 말아야 한다. 고독하지 않으면 예술가가 아니다. 종교가 대중에게 바른 삶을 보여주듯 예술도 대중과 어울리기 보다는 대중을 깨닫게 하고 이끌어 가야 한다. 그는 이름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후배가 되었건 다른 누군가가 되었건 자신의 예술을 통해 새로운 심미안을 얻고 예술 세계에 눈을 뜨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죽고 난 후에 제 그림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한두 명이라도 이 사람은 이렇게 이런 생각을 옮겨 놨구나 하고 쳐다봐 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어렵고 힘든 일이겠지만 내 그림을 통해 누군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만한 화가 인생을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예술로 끝나지 않는다. 예술이라는 꽃의 향기는 세상으로 퍼져 어떤 이에게는 삶의 의미가, 어떤 이에게는 희망이 될 것이다. 세상은 한 번에 바뀌지 않는다. 인연이 쌓이고 쌓여서 바뀌는 것이다. 그가 세상에 남긴 예술과 인연은 만 가지 꽃이 되어 어디선가 다시 피어날 것이다.


임효
실경화가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지만 샤머니즘, 불교 등 다양한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었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업 방식으로 한지를 이용한 부조화를 개발했고 최근에는 한지 부조화에 옻칠을 하는 방식을 통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작품 소장처로는 서울시립미술관, 유엔 ESCAP본부, 국립현대미술관 등이 있다.

글 표세현